본문 바로가기
전시회

2020.07.09(목)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하나의 인형, <피노키오전>

by 김자오 2020. 7. 15.
728x90
반응형

문득 전시회에 가고 싶어져서 이곳저곳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피노키오 전>.

주제가 명확하고 내가 아는 내용인 데다가 캐릭터 위주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30분도 안 걸리는 예술의 전당에서 한다기에 충동적으로 표를 예매했다.

그런데 아뿔싸, 입장 마감은 6시, 전시회 마감은 7시.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하다.

퇴근하고 곧장 달려가니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팜플렛에 그려진 그림이 벽 하나를 통째로 점령했다.

색을 어떻게 써야 그림을 더 돋보이게 할지 아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과감한 색이었다.

한 걸음 들어서니 오른쪽에서 짧은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종이 인형이 움직이는 것 같은 피노키오의 모험 애니메이션.

움직임이 어색한 만큼 오히려 스토리에 몰입하게 된다.

반대쪽 벽면에는 몇 개의 액자가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그림자와 마주 보고 선 듯한 그림이 눈에 띄었다.

자리를 옮기니 인형의 집처럼 생긴 책장이 보인다.

피노키오 전에서 나무로 만든 인형의 집. 왠지 의미심장하다.

그냥 피노키오 책을 전시하기 위해 놓은 듯했지만 단순한 네모 책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피노키오>를 쓴 '카를로 콜로디' 작가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음. 작가이자 기자였구나.

하지만 난 글자보다 그림을 보고 싶었기에 과감히 패스했다. :)

사실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다.

책장 사이에 피노키오 나무 조각이 있는데 꽤 단정한 소년처럼 보였다.

 

"색이 다른 건 왜일까?"

 

한국관 만국 박람회 그림이 있어서 피노키오와 무슨 상관인가 싶어서 봤는데 딱히 설명은 없었다.

그래도 왠지 한국 옛 모습을 외국인의 그림으로 보니 꽤 재미있다.

익숙한 모습을 색다르게 보여 주는 듯하다.

마치 이곳의 피노키오들처럼.

하나의 작품이지만 다루는 방식은 천차만별.

구역을 옮길 때마다 전혀 다른 색감이 먼저 반긴다.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 아마 시간만 많았다면 가만히 서서 색이 주는 힘을 받았을 듯싶다.

강렬한 힘과 고요한 압박감, 괜히 들뜨게 만드는 화사함.

액자가 아니라 색깔만 가득한 방이었어도 충분히 힘을 느꼈을 듯싶다.

어둡고 강한 색에 독특한 그림으로 피노키오를 드러낸 그림들.

피노키오는 익살맞으면서도 나약해 보인다.

진한 분홍색의 배경에 놓인 그림들은 명암이 확실하고 어두운 편이라 더욱 강렬한데,

그 가운데 피노키오는 이리저리 휩쓸릴 것처럼 생겼다.

단단한 몸에 나약한 인상이었다.

인물은 어둡게, 그러나 배경은 따듯한 느낌으로 그려 낸 듯싶다.

최초의 <피노키오> 영상이라고 하여 잠시 앉아서 시청했다.

언어는 외국어라 못 알아들었지만 내용이 짧고 명확해서 이해하기 쉬웠다.

막 태어난 피노키오는 촐싹 맞고 혼란 그 자체였으나 재미있다.

주홍색 벽이 나타났다!

각도에 따라 나무 인형에서 소년으로, 고릴라로, 다시 소년으로 변하는 그림이 있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사람들만 없었으면 이거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다시 보고, 따라 움직였을 텐데 아쉬웠다.

앗, 친구더러 사진 찍어 달라고 하고 나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 볼걸!

그림은 주홍색과 갈색이 많이 들어가서 따듯한 색이었는데 그림은 차가운 분위기였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자신의 그림자 코에 찔린 듯 보이는 그림이었는데,

어두운 색감에 피노키오의 표정은 밝아 보여서 대조적이었다.

가운데 노란색이 약간 노른자 같기도.

중간에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창의예술프로그램'이 안내되어 있는데 이 공간은 아이들의 체험장인 듯싶었다.

토요일, 일요일 특정 시간에만 진행하는 듯, 내가 갔을 때는 비어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이 색, 저 색이 얼기설기 그려진 그림이 보였다.

색으로 노는 프로그램인 것 같은데 나도 흥미가 생겼다.

특히 이곳에 와서 본 강렬한 색들은 내게 색을 그려 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바로 그 앞의 공간에 참여 공간이 놓여 있다.

처음에는 마구잡이로 색을 칠해 놓은 추상적인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테이블과 의자 위에 놓인 물건을 보고 정체를 알았다.

참여 공간이었다.

색을 마구 칠한 종이를 또 마구 찢어서 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그럼 보러 온 사람들은 구비된 풀을 종이에 발라서 하얀 벽에 붙일 수 있다.

손소독제도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것도 준비가 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종이를 붙이는 행위가 흥미로운 게 아니라,

혼란스러울 만큼 아무런 규칙 없이 마구 칠한 색깔들이 어지러이 붙는 게 재미있었다.

전시회 마지막 날에는 얼마나 화려하고 혼란스러운 벽이 될지 기대된다.

저거 상어인가 고래인가.

작품에서는 고래라고 쓰여 있었던 거 같은데 쟨 왜 상어처럼 보이는가.

엄청 무섭다.

거친 파도와 내려치는 번개 사이에서 그보다 더 살벌한 이빨을 드러낸 존재는 그림의 크기까지 커서 더 압도적이었다.

"쿠아앙!"

그 옆에 알록달록 놓인 그림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애써 눈을 돌리면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그래도 어째서인지 밸런스가 무너진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색 조합이 괜찮은 듯 보인다.

금속으로 피노키오 삽화를 표현한 작품이 있었는데

반짝거리는 게 왠지 종이투성이의 세상에서 유일한 질감을 가진 듯 보여서 눈이 갔다.

예쁘다거나 섬세한 것은 아니었으나 삽화를 금속 장식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밝은 색의 영상이 빔 프로젝터로 쏘아졌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림이란다.

피노키오랑 상관없지 않나 싶긴 한데 그냥 색이 밝고 나무 인형만큼이나 인간을 닮은 비인간적인 그림이라 어울렸다.

진노랑의 공간은 따듯하고 넓은 느낌이었다.

나무 오두막 같은 곳에 의자와 쿠션, 그림이 턱 놓여 있는데 그림은 눈에 안 들어오지만 이 오두막 같은 게 귀엽다.

이런 걸 해 잘 들고 시야가 탁 트인 곳에 놓고 지붕에 천을 얹어서 햇볕만 살짝 차단하면 정말 좋은 휴식처가 될 것 같다.

노란 벽면에 걸린 그림들은 정말 동화책이나 엽서에 그릴 법한 따듯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이었다.

피노키오가 얼핏 요정으로 보일 만큼 표현이 둥글고 부드럽다.

고래에 잡아먹힌 장면조차도 잠이 든 달, 입을 벌리고 잠이 든 고래 때문에 평온해 보였다.

고래를 돛단배 삼아 유유자적 떠다니는 것처럼도 보였는데

이건 크게 프린트해서 벽면에 붙여도 고요한 분위기를 주어서 좋을 것 같았다.

 

마치 '달도 잠이 든 밤이에요.'라고 하는 듯하다.

 

반대쪽 벽면은 진한 초록색이었는데 작품 수가 적어서 보니 옆에 폐쇄된 공간이 있었다.

아마 무슨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날은 하는 날이 아니어서 닫아 둔 모양이었다.

나무 오두막 너머에 의자가 줄줄이 놓여 있고, 흑백의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시간이 적어서 잠깐밖에 못 봤는데, 화려한 색의 애니메이션보다 재미있을 듯 보였다.

배우들의 의상부터 독특했는데 악당으로 보이는 인물은 정말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피노키오를 비롯한, 피에로 혹은 나무 인형들은 작고 약해 보였다.

꼭두각시 인형처럼 위에서 내려온 실에 팔다리가 묶인 인물들은 피에로처럼 화려한 의상이었는데 표정은 겁먹은 듯해서 악당이 화가 난 얼굴을 할 때마다 더 대조적으로 쭈그러드는 모양이었다.

제대로 봤으면 좋았을 듯하다.

 

하지만 내게는 시간이 없지. 지나가야 했다.

어린애 낙서 같은 그림들이 나왔다.

그림의 모양이 그렇기도 하지만, 어린애 낙서 같다 생각된 까닭은 선이 굵고 색이 대담해서였다.

비둘기색과 주황색 등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색을 용케 조합해 냈다.

그중 선만 있고 색은 없는 아이와 마주한 진녹색의 공룡 같은 괴물 그림이 눈에 띄었다.

 

이상하게 눈에 익다.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었는데 어디서, 어떤 걸 봤는지 도통 기억이 안 난다.

 

비슷한 걸 봤거나, 아니면 이 괴물 그림만 떠도는 걸 봤던 듯싶다.

 

평소라면 흥미가 없어서 지나쳤을 법한 그림인데 낯이 익어서 꽤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조각보를 붙인 듯한 그림들.

한쪽 벽에 정말로 불투명한 유리로 그림을 표현해 낸 게,

스테인드 글라스를 연상시키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스테인드 글라스보다는 조각보나 색종이를 오려 붙인 모자이크 그림이 생각난다.

그림 자체는 섬세하기보다 단순하지만 나눠서 색을 표현한 것은 생각을 많이 한 티가 났다.

다시 나타난 노란색의 공간.

그러나 이번은 노란색이 힘이 있다기보다는 적막하다.

 

색은 담백하고 농도가 진한 빛이지만, 쓸쓸하다.

그림은 선이 적고 단순한 느낌이었는데 그 그림의 단순함과 담백한 색이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었다.

쓸쓸하고 적막하고 외롭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외로워져서 어딘가 기댈 곳, 따듯한 빛을 찾게 된다.

오래 보고 있기에는 내게 벅찬 그림이었다.

그중에서도 물속에 거꾸러져서 물고기에 둘러싸인 그림을 보니 숨이 막혔다.

시선에 찔리면서도 고립된 상황.

 

목에 걸린 바위가 저 밑으로, 밑으로 끌어당긴다.

숨이 막힌다.

뒤를 돌아보니 주황색 모자를 쓰고 마주 본 두 소년과 나무 인형, 그 양옆으로 하늘색과 분홍색의 배경이 어우러진다.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다.

다시 화사한 빛의 세계에 들어선 것 같다.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화사한 연분홍색이 잘 어울리는 그림이 큼직하게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그림 자체는 예쁘지 않았지만 노을과 풀잎의 색이 절묘하여 경쾌하고 포근하다.

물고기들로 표현한 피노키오의 세계는 어둡지만 포근한 동화의 세계였다.

중간에 놓인 책은 그 표지가 분홍 벽면과 특히 잘 어울렸는데, 딱 저 조합으로 엽서가 있다면 사고 싶었다.

물고기 피노키오 인형!

무표정한 얼굴에 매끈한 선, 뾰족한 손발이 정말 귀엽다.

 

지금껏 보지 못한 피노키오.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안쓰러움도 있었다.

꽃분홍의 공간이 드러난다.

흑백의 그림이지만 분홍이나 노랑의 화사한 색 하나로 포인트를 준 그림이 멀리서도 눈에 띈다.

그 색감만으로도 강렬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벽의 색이 아니었더라도, 그림이 가진 색이 발랄해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라, 익숙한 인형이 걸려 있다.

탈을 쓰고 한복을 입은 꼭두각시 인형이라니.

진열장 옆에도 한복을 입은 인형이 또 하나 걸려 있고 탈에 한복 차림의 인형 그림이 익살 맞은 모습으로 뛰놀고 있었다.

옆의 글을 보니 '민경아 작가'의 피노키오 오브제 모음이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인형이 있었구나.

한복의 화사한 색감과 이곳의 작품은 꽤 잘 어울렸다.

뒤돌아 보니 이번엔 거대한 고래와, 그 안에서 손을 흔드는 노인과 피노키오가 있다.

너희… 그러고 있을 때니?

 

하지만 마주 손을 흔들어 주고 싶을 만큼 반가운 모습이었다. :)

더 들어가니 공간이 제법 넓다. 오른쪽부터 돌아보았다.

그냥 넓은 형광펜 같은 걸로 낙서한 듯 보이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주황색 베이스로 고만고만한 색을 칠한 것도 있었지만, 파란색, 녹색, 주황색, 노란색 등 화려한 색을 칠한 것도 있었다.

꽤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피노키오'와 어울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무 틀에 문구멍을 내고 그 안에 그림 한 점이 걸려 있다.

빛이 쏘아지면 조금씩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연두색, 혹은 붉은색의 빛이 쏘아지면 그림에서 붉은 새 한 마리가 선명히 드러난다.

 

이게 퍽 인상적이었다.

 

새는 붉고, 얼핏 성의 없는 듯 보이는 선으로 그려졌다.

조명이 바뀌면 또 숨어 버리는 새.

 

조명을 이용한 그림이란 건 생각 외로 흥미롭다.

드디어 고래 입에 들어간 피노키오와 할아버지를 만나 보았다.

 

종이로 만든 인형을 거대하게 세워 놓은 모양이었는데, 납작한 면을 몇 개 붙여서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고래의 푸른 회색의 등에 일렁이는 물 그림자를 빛으로 표현한다.

 

공간을 가득 채운 물 그림자는 예쁘지만 어딘가 어설프다.

 

왜일까 하니, 소리가 없었다.

파도 소리, 물소리.

 

소리가 없이 빛만 일렁거리니 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을 수는 있지만 물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선명한 수채화 그림.

처음 마주했을 때는 알록달록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다가가서 보니 섬세하다.

나무에 걸린 노을은 푸른 가운데 붉다.

선명한 붉은빛과 푸른빛이 그 사이의 경계가 대단히 얇음에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연보라색의 노을 아래 달려가는 사람과, 두 마리 들짐승.

얇은 선으로 표현했지만 달리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그 움직임에서 이유 모를 감동을 느낀다.

 

그들의 발 아래에서 위로 자라는 풀잎은 색이 번진 것이다.

물에 번진 빛깔이 퍽 섬세하다.

살짝 옆으로 나가면 얼굴에 상대를 비추는 나무 인형이 앉아 있다.

얼굴이 영상을 보여 주는 기기였는데, 거기에 내가 비쳐서 꽤 재미있었다.

 

그 아래로 심장이 있는 건 지금 알았다.

심장이 뛰는지 봤으면 좋았을 걸.

마감 시간이 다 되어 얼른 그 옆, 마지막 공간으로 향했다.

유물처럼 놓인 피노키오 인형들. 말라서 부서지는 점토 인형들이 그곳에 웅크려 있었다.

 

부서진, 부서지다 만, 부서질 인형들.

 

안쓰러운 가운데, 만들어지다 말았지만 부서진 곳 없는 피노키오가 눈을 감고 있다.

 

기괴한 듯 안쓰러운 듯 고요하다.

관람객에게 보여 주는 마지막 영상은 인간이 된 피노키오가 할아버지와 꼭 끌어안는 장면이었다.

 

흑백 영상이어서인지 옛날 영상의 느낌이 강해서인지

정말 동화책의 마지막 문구,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를 보는 듯했다.

밖으로 나오면 이제 굿들이 있다.

그림책, 엽서, 에코백, 뱃지, 인형 열쇠고리….

뱃지 중에 까만 새를 발견했다. 이것도 까마귀인가 싶어서 반가웠지. :)

예약 내역을 보여 주면 엽서가 주어진다.

빨간 모자를 쓴 피노키오가 씩씩하게 걷는 그림의 엽서인데, 명랑하고 희망 찬 느낌이 강하다.

6시에 들어가서 7시에 나왔는데 정말 한 시간이 부족할 많큼 알찬 구성이었다.

 

아주 많은 그림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걸려 있다.

 

시간을 맞춰서 갔다면 여기에서 하는 프로그램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건 좀 아쉬웠다.

참여하는 종류는 즐기지 않지만, 이곳의 여러 색채를 보고 있자니 한 번쯤은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728x90
반응형

'전시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서초구] 예술의 전당 전시회, Turn off the Frame.  (1) 2023.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