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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2020.07.05(일) 여운이 남는 뮤지컬, <난설>

by 김자오 2020.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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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뮤지컬 '난설' ⓒ콘텐츠플래닝

 

날짜: 7월 5일 18:00

캐스팅: 안유진(허초희), 이달(정성일), 최호승(허균)

 

의상: 허초희는 남성용의 연한 색상의 비단옷, 초록색 옷, 검은색 활동복, 검은색 여성 한복 등. 이달은 겉옷이 시스루인 검은색 한복, 최호승은 무명옷.

 

▲ 창작뮤지컬 '난설' 공연 전 캐스팅 보드

공연 전과 후에 살짝 달라지는 게 있습니다!

이게 또 재미있네요.

공연을 보러 가시는 분은 요 작은 비밀을 찾아봐도 좋을 것 같아요. :)


▲ 창작뮤지컬 '난설' 7월 이벤트

 

7월은 난설 이벤트의 달입니다.

 

첫째 주: 프리뷰 할인, 대사 티켓 증정

둘째 주: 커튼콜 촬영 가능, 허초희 티켓꽂이 증정

셋째 주: 당일 캐스트 폴라로이드 사진을 랜덤으로 1장 증정.

 

그리고 더블 적립 데이도 있으니까 이벤트 보고 가세요!

 

두 번째 관람부터 주어지는 적립 카드가 있으니 MD 부스에서 확인 후 지음 카드 챙기세요.

세 번째 관람 도장을 찍으면 50% 할인 쿠폰이 주어집니다. :)

 

대사 티켓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재관람 도장판을 찍으며 모으는 것도 재미있어요.

아래 사진은 제가 받은 대사 티켓이랍니다! ^^

▲ 창작뮤지컬 '난설' 대사 티켓, 허균의 대사


내용:

 

▲ 창작뮤지컬 '난설' ⓒ콘텐츠플래닝

 

여성에게는 시를 쓰는 것도 밖을 나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시대, 허초희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평소 존경하던 시인 이달을 우연히 만나서 친해진다. 한편 허균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실망시킨 뒤로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 허초희는 그런 허균을 안타까워하며 품고 살지만 끊임없이 세상으로 이끌고자 애쓴다. 결국 이달의 제자가 되어 함께 시를 배우게 되는 두 남매. 그러나 단지 시를 배우기만 하는 허균과 달리 허초희는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다. 이달은 얼자라는 이유로 적자인 형에게 폭력을 당하고, 그것을 보던 허초희는 안타까워한다. 그러다 이달의 형이 이달에게서 글을 배우던 끝단이를 강간하고 죽여서 강에 버리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사건으로 허초희는 무언가 하려고 결심한다. 이달과 허초희는 끝단이의 죽음을 관아에 고발하지만 관아는 움직이지 않는다. 결국 둘은 이달의 형을 습격하여 피를 보려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이들이 위험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은 허균이 둘을 고발한 것이다. 그 뒤 허균은 두 사람이 도성 밖으로 도망칠 수 있도록 말과 돈을 준비하고 기다리지만, 이달은 나타나지 않는다. 허초희에게 자유를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두려워졌다고 말한다. 결국 이달은 이 일로 죽임을 당하고 만다. 허초희는 얼마 후 강제로 혼인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불행한 삶을 산다. 허균이 만나러 갔을 때는 이미 검은 상복을 입고 시를 태우고 있다. 그리고 얼마 뒤 허초희 역시 죽고 만다. 허균은 백성에게 글을 가르치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가 눈 밖에 나서 처형당한다.

 


 

▲ 창작뮤지컬 '난설' ⓒ콘텐츠플래닝(참고사진. 2019년 공연)

 

무대를 향해 뚫린 디귿 자 모양으로 하얀 나무가 세워져 있다. 양옆으로 낮은 계단과 복도가 있고, 그 뒤로 조명이 숨어 있다. 휑하니 텅 빈 공간이 관객을 맞이한다. 하얀 나무에 은은한 빛이 드니 무대가 예쁘면서도 쓸쓸하다.

어둑한 가운데 조명이 들어오고 허균이 객석을 향해 울부짖는다. 자신은 역모를 꾀하지 않았노라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매를 맞고 불에 지져지고. 다시 일어난 허균의 눈에 불길이 인다.

 

“지져라, 태워라.”

 

분연히 일어나지만 상황을 뒤집을 힘이 없다. 감옥에 갇혀 죽을 때만 기다리는 그의 앞에 스승인 이달이 나타난다. 까만 비단옷을 입은 그는 하얀 무명옷을 입은 허균과 대비되었다.

 

국악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피아노 소리 때문인지 묘한 음이 매력적이다. 느릿하게 그리움을 노래하는 소리는 시적이고, 그 대상인 허초희는 밝게 웃으며 무대를 노닌다.

 

허초희와 이달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이복형에게 맞고 있는 이달을 허초희가 구해 주며 시작된 인연은 통성명도 안 했으면서 서로를 지음이라 부르는 사이로 시작된다. 그러나 곧 상대가 이달인 것을 모르는 허초희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달에 대한 부정적인 말에 실망하며 다툼이 일어난다. 허초희는 본 적도 없는 시인을 흠모하여 감싸기 급급하다가, 이후 상대가 바로 그 이달임을 알고는 민망해한다. 이달은 장난으로 허초희와의 갈등을 풀어 버리고, 이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견고해진다. 허초희는 시에 관한 열정을 숨기지 않고, 이달은 내내 장난을 치는데 그게 죽이 잘 맞았다.

이 장면은 전체적으로 쓸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난설>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라 인상 깊다. 허균과 단둘만의 세계에 들어간 허초희의 모습도 이처럼 밝기만 하지는 않았다. 동생에 대한 걱정과 밖을 향한 열망은 허균과 있어도 숨길 수 없다.

 


  • 안유진 배우:

▲ 창작뮤지컬 '난설' 허초희 역 안유진 배우

 

 남자인 체하는 역할을 잘 살린다. 낮게 까는 목소리는 어색함이 없고 시원하게 뻗는다. 가끔 흥분해서 여자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때도 튀지 않으면서도 귀엽게 살렸다. 남자로서의 목소리나 말투는 처음 장면에서는 조금 어색하게 나오는데, 그 뒤로는 사극 말투도 그렇고 남장했을 때 말투도 자연스러운 게 일부러 첫 장면에서는 어색하게 표현한 듯싶다. 목소리가 쭉 뻗어 나가고 노래를 잘 불러서 듣기 좋다.

 

밝은 연기, 애틋한 연기, 달래는 연기 등 자연스럽다. 신나서 웃을 때면 발랄하고 귀여운 게 꼭 어린애 같다. 허초희의 밝고 사랑스러운 면을 잘 살리는 배우다. 다른 인물과 대화할 때 움직임은 과감하면서도 매끄럽고 표현에 군더더기가 없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상복을 입고 처음 노래 부를 때 슬픔이나 분노가 섞인 듯싶은데 좀 더 명확히 드러나면 좋을 듯하다. 대사를 씹는 경우가 좀 있었는데 너무 급해서 그랬던 것 같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하면 문제없을 듯하다. 대본에 있는 텍스트 이상으로 인물을 알아본 느낌이 있다.

 

방을 붙여서 이달의 형이 저지른 죄목을 낱낱이 밝히려 하던 장면이 아쉬웠다. 몰래 방에 놓아두었던 방과 칼을 챙기는데, 방의 경우엔 위험한 물건인데도 책상 위에 턱 올려져 있어서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그걸 챙기려고 하는데 허균이 등장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남으니, 본인이 준비한 물건이고 본인의 방인데도 불구하고 이 종이가 맞나 확인을 하고, 성급히 들고 나가기보다 천천히 접어서 챙기려는 듯 보였다. 마음이 급할 경우 후다닥 챙겨서 품에 넣을 듯한데 그러지 않는다. 방을 책상 위에 올려 둔 데 반해서 칼은 숨겨져 있다. 종이 뭉치를 숨길 곳은 붓이 있던 비밀 서랍도 있으니 얼마든 활용 가능할 듯한데 너무 대놓고 있으니 말이 안 되는 듯 보인다. 허초희가 물건을 챙길 시간을 아예 없애는 게 나을 듯하다.

 

이후 안 좋은 일을 겪고 음울해지는데 명확한 내용이 없고 텍스트도 그저 분위기만 쓸쓸해서 그런지 연기가 살지 않았다. 하지만 연기가 진지하게 슬펐더라면 얼마나 연기를 잘했든 텍스트가 내용을 드러내지 않으니 오히려 튀었을 듯하다. 나름대로 장면과 인물 간의 힘을 조절하는 배우로 보였다.

 

  • 정성일 배우:

▲ 창작뮤지컬 '난설' 이달 역 정성일 배우

 

건들거리지 않으면서도 능청스러운 한량의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튀지 않고 적당히 어우러지면서도 상대 배우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 타이밍이나 호흡 등으로 농담, 가벼운 유쾌함을 잘 살려 낸다. 사극 말투가 가장 자연스럽고 말에 높낮이가 있어서 잘 들린다. 이 높낮이는 사실 정성일 배우의 쪼인데 그래도 이달이라는 인물의 한량스러운 면모와 유쾌함을 살리는 데는 꽤 어울렸다. 허초희와 있을 때와 허균과 있을 때 농담을 하는 투가 다른 점이 재미있다. 허초희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는 그저 즐거워만 했는데, 허균의 망상 속에서 농담을 할 때는 말에 뼈를 숨긴 듯 느껴질 때가 있었다.

 

처음 대사를 시작할 때 목소리가 작게 나오는 버릇이 남아 있으나 뮤지컬이라 마이크 덕에 잘 들린다. 거문고 연주할 때와 객석에 불이 들어올 때마다 객석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너무 떨어뜨린다. 허초희와 첫 만남에서 자신을 칭찬하는 등의 말을 할 때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는지 조금 모호하다. 움직임이 거침없으나 동선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티가 날 때가 있다. 퇴장했다가 허균의 회상이 끝날 때쯤 다시 무대에 오르는데, 그때 그 자리에 서야만 한다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스러워지기 위해 연습을 너무 많이 한 티가 나는 듯 보였다. 연습 아주 많이 한 티. 시를 가르치다가 형 얘기를 할 때 표정이 좀 더 감정을 전달하면 좋을 것 같다.

 

허초희와 있을 때는 환하게 웃거나 통통 튀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감옥에 갇힌 허균과 대화를 할 때는 침중하고 음울한 소리를 낸다. 이 격차가 막 극심하지 않아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도 둘 다 이달에 어울렸다. 회상이 아닌 현재 시점에서 허균과 이야기하는 모습은 때론 초연한 모습을 보이지만 허초희의 이야기만 나오면 은근히 들뜬 기색이 나타난다. 그가 허초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다만 대본에서 기회를 주지 않아서, 대사에도 장면에도 허초희와 이달의 관계가 또렷이 드러난 장면이 없어서 허초희를 보는 눈에 사랑이 있거나 애틋함이 보인 적은 없었다. 이달이 허초희를 그저 바라보고 있는 장면도 없었기 때문인데 그게 참 아쉬웠다. 그럼에도 정성일 배우가 허초희를 바라볼 때면 단순히 귀여운 아이, 동생 같은 여자,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그 이상의 무언가가 간혹 보인다.

 

  • 최호승 배우:

▲ 창작뮤지컬 '난설' 허균 역 최호승 배우

 

허초희와 얘기할 때는 어린애 같다가, 검은 숲에서 이달과 이야기할 때는 어른스러워진다. 허초희의 두 손을 잡고 애원할 때는 늘 허리를 굽혀서 몸을 낮추는데 그게 정말 허초희를 위로 보고 의지하고, 어리광을 부리며 동시에 그 인물이 나약하고 소심하며 의존적인 듯 보이게 한다. 만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면 허균의 나약함과 어린애 같은 면이 살지 않았을 듯하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은’ 누나를, ‘땅을 향해 손을 뻗은’ 남동생으로서 올려다보는 것도 같았다. 방 안이라는, 어른일 필요가 없는 공간에서 둘만의 아늑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 낸다. 이런 모습은 허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을 만큼 많이 드러나는데, 그렇기에 나중에 누나와 스승을 잃고도 세상에 홀로 나선 그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처음 등장해서 매를 맞고 인두에 지져진 후, “태우고 지져라.” 하고 시작하는데 이 중간이 없다. 맞을 때의 아픔이나 분노가 없다가 갑자기 넘버로 넘어가야 해서 둘 다 감정이 죽어 버렸다. 맞은 직후 부들부들 떠는 등의 시간이 좀 더 주어진다면 좋을 듯하다.

 

시를 배울 때 허초희는 시 자체에 심취한 느낌이었다면 허균은 분위기에 취한 듯했다. 그러다가 허초희와 이달이 신나서 둘만 얘기할 때 의기소침하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조금 들었는데, 시간이 더 주어지지 않고 바로 퇴장해 버려서 이 부분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게 아쉬웠다.

 

허균이 집착하고 있는 대상이 명확한데, 그가 허초희의 계획을 방해한 상황이 몇 마디 말로만 풀렸을 뿐이라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었다. 허균이 허초희를 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던 까닭을 알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만난 이달을 향한 얼굴은 달라진다. 금세 뾰로통해지고 활짝 웃곤 하던 표정은 지치고 초연해진다. 이달을 처음 본 그 순간의 허균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애원인지 원망인지 혹은 그리움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말들은 모조리 원망이며 책임 전가였다. 간간이 허초희를 지키지 못하고 위험에 빠뜨린 이달에게 분노하는데 그때 감정이 간혹 약하게 느껴진다. 더 분노하라는 게 아니라, 아직 배우가 장면의 흐름이나 대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 충분히 느끼고 가거나, 못 느끼면 기술적으로 가면 되는데 대사를 친 뒤에야 감정이 뒤따르는 듯해서 좀 늦게 가는 듯했다. 차라리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속도로 가면 될 것 같다.

 


무대:

 

처음에는 텅 비어 있다. 무대의 뒤와 양옆에 나무를 갖다 놓고, 양옆 나무 뒤쪽에는 계단과 길을 내고 조명을 놓았다. 하지만 이 길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무대를 좁게 만들기만 하여, 차라리 양옆은 공간을 없애고 나무만 두어도 좋았을 듯하다. 필요하다면 조명으로 공간을 분리하면 됐을 것 같다. 조명이 무대에 있는 것치고 그 조명들이 훌륭히 쓰인 것 같지 않다.

 

빔 프로젝트는 많이 쓰였으나 쓰임이 아쉬웠다. 세 사람의 걸음에 맞춰서 갈지자[之] 모양으로 시작하여 배우의 걸음을 따라 길어지는 붓 길, 그리고 이달을 가운데에 두고 한 획씩 그어서 그를 가둬 버리는 붓 길이 그것들이었다. 앞선 것은 정말 걸음에 맞춰서 가는 것이었다면 좋을 텐데 미묘하게 동선이랑 안 맞기도 하고, 그렇게 강조할 만한 장면은 아니었던 듯했다. 뒤의 것은 이달이 가운데 갇히기까지 사실 썩 예쁘지 않았던 데다가, 갇히고 난 후 갑자기 그 먹 줄기들이 이달을 사이에 두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해서 정신없고 대사에 대한 집중을 흐려 놓았던 점이 많이 아쉬웠다. 가둔 느낌도 아니고 혼란스러운 느낌도 아니었다. 빔 프로젝터가 쓰여서 좋았던 건 마지막에 눈이 올 때였다. 제일 마지막에 퇴장하는 허초희가 허공에 손을 뻗고 눈을 맞는데, 그 모습이 참 예뻤다.

 

무대 뒤를 높인 건 한자 시구를 조명으로 바닥에 쏘기 위해서였던 듯한데 그것 말고는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탁 트이지 않고 답답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막상 한자를 빔 프로젝트로 쏘았을 땐 배우나 무대에 가려서 시도 안 보이고, 한자에 대한 설명도 없으니 한자를 모르면 의미 없고, 예쁘지도 않았다. 한자를 쏘았던 장면에서 좋았던 건 허초희의 시는 몇 글자씩 띄어서 큼직하게 쓰인 데 비해서 허균의 시는 작은 글씨로 길게 한두 줄로 쓰였다는 점이었다. 이게 보이니 두 사람의 성격이 대비되어서 좋았다. 그러나 이달의 시는 대비가 약해서 인상이 약하다. 그리고 벤치는 의미 없이 움직이는 듯하다. 그냥 무대 뒤쪽으로 고정해 놓고 쓰면 될 것 같다. 벤치가 움직이면 오히려 시선이 분산돼서 집중이 안 된다.

 

무대 얘기는 아니지만, 신풍주라고 생각하자며 마시는 술은 빈 주전자로 따르기 때문에 그 자세도, 마시는 속도나 모양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물을 담아서 조금씩 따라 마셨다면 보다 나았을 듯하다.

 


대본:

 

인상이 약하다. 이야기는 클리셰였으나 친절하지 않다.

 

허초희, 이달의 만남 외에는 어떤 것도 인상에 남지 않는다. 강조한 장면도 없고 명확한 관계 형성이라고는 허균이 허초희에게 의지한다는 것뿐이다. 허초희와 이달의 관계는 불명확해서 애틋함을 느낄 새가 없고, 이달과 허균의 관계는 얄팍하게 묘사되어서 무슨 관계인지도 알기 어렵다. 대사로 봐서 이렇겠구나 추측을 할 수 있고, 그들이 서로에게 하는 말에 드러나긴 하지만 당사자들의 관계를 보기만 할 때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허초희와 이달 사이의 애달픔이나 허균과 이달의 신뢰 따위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말이 아닌 상대의 설명으로 드러나 버리니 아쉬움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밝은 장면이 잠깐 있다가 그 뒤로 내내 잔잔하기만 하다. 허초희의 죽음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지만 왜, 어떻게 죽었는지 나오지 않아서 공감하기 어렵다. 허초희의 불행을 일일이 나열할 필요는 없지만 정보가 더 제공되어야 할 듯하다. 허초희, 이달의 습격도 허균과 이달의 대사로만 잠시 언급되어서 급박함이나 그들의 필사적인 마음이 드러나지 않고, 이달의 죽음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으니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어렵다.

 

현재와 과거, 망상을 오가는 것은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사건이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너무 많은 이야기가 생략되어서 대부분의 이야기를 맥락으로 유추해야 했다. 왜 허초희가 위험을 무릅썼는지, 이달은 그동안 쭉 참고 살았으면서 허초희를 껴서 위험한 상황에 몸을 밀어 넣었는지 등의 설명이 나중에야 허균의 입에서 나오고, 둘의 관계도 나중에야 허균이 말하지만 그것도 정확한 말이 아니라 돌려 말해서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사건 이후 허초희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는데,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해서 힘들어했는지 아니면 세상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 묶인 삶을 살게 되어 힘들어한 것인지 정보가 없어서 허초희가 시를 태우고 “내가 죽거든 내 시를 모두 태워 주렴. 내 대신 세상을 훨훨 날 수 있게 해 다오.” 하고 말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맥락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고 허균과 허초희의 관계가 또렷하여 나름대로는 그 애달픔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살던 허균이 허초희나 이달의 도움 없이 홀로 세상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을 극 중에서는 보지 못 했지만, 내내 자신을 벽 안에 가둬 두었던 허균이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처형당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에게 굽히지 않는 모습이 분명 달랐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달, 허균, 허초희가 나란히 앉아 있다. 양옆으로 상복을 입은 스승과 누이를 두고 허균은 여전히 새하얀 옷을 입고 있다. 죽은 듯 가만히 앉아 있던 그들이 하나씩 일어나고 움직이니 허균은 마침내 망각에서 벗어나 죽음 앞에 섰다. 그들의 희고 검은 옷은 이 장면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검은 옷만 상복이 아니다. 흰 옷도 죽은 이를 기리는 옷. 어쩌면 허균은 살아 있는 내내 허초희와 이달을 그리워하며 기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 창작뮤지컬 '난설' 공연 후 캐스팅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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